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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코롤료프의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J.S.Bach : Goldberg Variations, BWV988


Evgeni Koroliov


Hanssler



 골드베르크 변주곡 자체에 대한 설명을 쓰는 것은 그야말로 사족이리라.


 예전 스즈키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글을 쓰며 '나는 아마도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의 연주를 가장 다양하게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허나 지금 글을 쓰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과는 경우가 다르다. 나의 골드베르크 여정은 몇 년 전 지른 이 음반에서 종결되었고 그 상태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적어도 피아노로 연주한 골드베르크에서는 말이다. (뭐 현재 가지고 있는 골드베르크 음반 모두가 피아노로 연주된 거라 하프시코드로 연주된 골드베르크 음반은 하나 지르고프긴 하다.)


 내가 이 연주를 왜 좋아하는지 쓰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몇 번이나 글을 썼다 지웠나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이 연주의 특징 2가지가 있는데, 이 두 특징이 얼핏 듣기에 모순된다고 느낄 여지가 다분해서이다. 짧은 글솜씨로 이를 설명하자니 무척 버겁게 느껴진다.


 이 연주의 첫 번째 특징은 일관성이다. 여기서의 일관성이란 음색과 다이내믹의 일관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한 내 추측일 따름이지만 코롤료프는 분명 이 곡이 본디 하프시코드를 위한 것이었음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피아노와 달리 하프시코드는 음색이 일정하며 강약 조절 또한 불가능한 수준이다. 코롤료프는 그 사실을 의식해 그런 특징과 무관한 피아노로 연주함에도 음색과 다이내믹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다. 첫 음부터 끝 음까지 음색은 일관되며 다이내믹은 일정한 틀 안에 제한되어 있다. 가끔 이 연주를 단조롭다고 평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코롤료프의 일정한 음색과 제한된 다이내믹 때문일 것이다.


 다른 특징 하나는 다채로움이다. 일관성과 다채로움이라니? 내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농담이 아니다. 분명 이 연주의 톤은 일정하고 다이내믹 또한 제한되어 있다. 그렇지만 코롤료프는 그 틀 안에서 수많은 뉘앙스를 불어넣는다. 단순히 피아노로 하프시코드의 소리를 흉내내기만 한다면 그 연주에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도돌이표를 만나 곡이 반복될 때마다 코롤료프는 미세하게 음의 길이를 변화시키고(스타카토와 테누토의 차이) 강약에 변화를 준다. 도돌이표 이후 연주에 변화를 주는 것은 비단 코롤료프뿐만이 아니지만, 나는 코롤료프만큼 맛깔스러운 변화를 주는 연주를 들은 기억이 없다. 


 쉬프가 쓴 글에서도 나왔듯이 '바흐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은 언제까지고 유효한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코롤료프는 피아노로 바흐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 정당한 계승임을 우리에게 역설한다. 온고지신이라고 했던가? 하프시코드의 전통을 존중함과 동시에 피아노만이 지닌 장점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코롤료프의 연주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피아노로 바흐를 듣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아, 망글이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