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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스즈키의 바흐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J.S.Bach : Brandenburg Concertos


Bach Collegium Japan

Masaaki Suzuki (cond.)


BIS



 클래식을 듣다 보면 좋아하는 곡이 생겨 그 곡의 여러 연주를 찾아 듣게 되는 일이 흔하다. 그나마 난 매사에 쉽게 싫증을 내는 성격이라 비교적 한 곡의 여러 연주를 찾아 듣는 일이 적은 편이지만, 표현 그대로 '비교적'일 뿐이지 나 또한 보다 다양한 연주로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곡이 여럿 있다. 1년에 하나씩 장만하겠다고 다짐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이나, 현재 가장 여러 종류의 연주로 보유하고 있는 쇼팽의 발라드나, 근래에 쳄발로 연주로 하나 새로 장만해야겠다고 느끼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나... 지금 언급한 곡들은 여러 연주를 갈망하게 한 가장 대표적인 곡들일 뿐이고 저곡들 외에도 같은 열망을 품게 한 곡들은 부지기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난 내가 가장 다양한 연주로 소유할 곡이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자각하고 있었다. 대체 왜? 이제까지 겨우 매리너와 스즈키의 음반 단둘만 가지고 있으면서? 더군다나 스즈키의 음반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면서?


 그건 아마도 내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가장 이상적인 음악의 형태라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보다도 좋아하는 곡들이 여럿 있다. 그럼에도 그런 곡들이 아닌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여러 연주로 듣고 싶어 하는 것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의 독특한 형식과 곡 자체의 특출난 완성도 때문일 것이다. 바로크 시대에 잠깐 유행했던 합주 협주곡은 그 형식으로 작곡된 곡 자체가 적을뿐더러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만큼의 완성도를 가진 곡은 더더욱이나 적다. 작년 큰 기대를 품고 샀던 헨델의 콘체르토 그로소 op.6을 듣고 얼마나 실망을 했던지... 곡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아니 사실은 충분히 즐겁게 들었었지만,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만큼의 감흥을 원했던 내 기대에는 한참 못 미치는 곡이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인지도 모르겠지만.


 합주 협주곡 형식이 금세 음악계에서 자취를 감춘 건 그저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다. 음악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즐거움은 클래식의 어떤 형식보다도 크지 않나? 소편성이기에 연주자들끼리 아기자기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여러 독주자가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그것을 뒤에서 즐겁게 받쳐주고... 바로크 이후 연주자 간의 수평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음악 만들기의 즐거움은 자취를 감추고 악보를 통한 음악 만들기는 사뭇 진지한 것으로 변모한다. 즉흥성과 더불어 유희의 대상으로 음악을 바라보는 유쾌한 태도는 클래식이 발전해나가며 놓친 무언가 중 하나일 것이다.


 스즈키의 이름을 달고 글을 썼으니 간단하게나마 감상을 적어야 도리일 테다. 스즈키는 몇몇 시대연주가들에게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속도감이나 과감한 공격성과는 아주 거리가 먼 지휘자이다. 그가 일본인이라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연주는 지극히 정갈하고 단정하다. 조르디 사발이 가끔은 단정함이 지나쳐 답답하다는 느낌을 줄 때도 있는 반면 스즈키는 단정함이 과하지 않아 답답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스즈키의 연주는 스즈키와 연주자들이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음악을 충분히 즐긴다는 느낌이다. 덕분에 청자인 나도 아무런 부담 없이 곡 자체를 즐거이 음미할 수 있는 거고.


 나의 다음 브란덴부르크는 무엇이 될는지. 감상실에서 들었던 Seon에서 나온 레온하르트의 연주는 옛 시대연주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는 지극히 훌륭한 연주였지만 지금은 구할 수가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트레버 피녹의 우표시리즈로 나온 바흐 협주곡 박셋에 들어있는 연주도 좋을 테고 최근 나온 신반 또한 좋을 것이다. 역시나 박셋으로 나온 Kuijken(이분 이름은 우리말로 쓰기 참 난감하다;;)도 많이 끌리고. 위에서는 부정적으로 평하기는 했어도 사발과 올스타 멤버의 연주도 끌리고, 시대연주의 극단을 들려준다는 괴벨의 연주 또한 호기심이 인다. 아, 가디너와 일당들의 녹음 또한 까먹으면 안 되겠지. 하지만 뭐 아무래도 좋다. 어느 연주로 듣던 이 곡을 듣고 실망할 일은 좀처럼 없을 테니 말이다.


 글을 쓰니 새로운 연주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다.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