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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브론프만과 진먼의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5번




L.V.Beethoven : Piano Concerto No.5 in E flat major, op.73 [Emperor]


Yefim Bronfman (piano)

Tonhalle Orchestra Zurich

David Zinman (cond.)


Arte Nova



다음 주에 있을 김선욱, 정명훈, 서울시향의 공연 예습을 위해 위 음반을 꺼내 듣고 있다. 공연 예습을 할 때는 공연에서 예상되는 연주와 최대한 흡사한 연주를 찾아 듣는 편인데 오늘만은 예외다. 베피협 5번은 내가 위의 음반을 워낙 아껴 어지간하면 다른 음반을 꺼내 듣지 않는 곡이니까 말이다.


황제야 클덕이라면 누구나 물릴 정도로 듣는 곡이고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황제'라는 거창한 부제가 있어 유명한 곡이지 그렇게 압도적으로 뛰어난 곡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전형적인 '피아노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무한 반복하는' 피아노 협주곡 아닌가? 물론 '피아노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고 모두 황제만큼 멋진 곡이 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징그럽도록 익숙한 곡을 위 연주로 들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니, 내가 무슨 락을 듣고 있는 건가? 우퍼를 빵빵하게 틀어놓은 듯한 느낌의 오케스트라는 물론 쫀득쫀득하게 왼손으로 첫박마다 미묘하게 강세를 넣는 피아노까지. 브론프만은 초등학교 때 배우는 4/4박자의 '강 약 중간 약'을 연주로 들려주는 느낌이다. 덕분에 다른 연주에서는 들을 수 없는 뚜렷한 리듬감을 찾을 수 있는 거고. 진먼의 연주 역시 강세를 넣을 때는 확실하게 넣어주며 피아니스트의 해석과 궤를 같이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휘자도 즐겁고 피아니스트도 즐거우니 어떤 황제보다도 짜릿하고 흥분되는 연주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협연자와 지휘자가 죽이 잘 맞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연주라고나 할까.


가끔은 지금까지 모은 음반들을 보며 '저 많은 음반 중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계속 듣게 될 음반이 몇이나 있을까' 자문하곤 한다. 그리고 이 음반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계속 듣게 되리라 확신할 수 있는 극소수의 음반 중 하나고. 그만큼 아끼는 앨범이란 얘기다.




덧. '강 약 중간 약'을 쓰는데 '중간'이 맞는 건지 '중강'이 맞는 건지. 지금까지 '중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인터넷에선 '중강'이라 쓰는 사람들이 간혹 보여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