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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Eric Dolphy - Out To Lunch



 블로그에 쓰는 첫 재즈 음반이 요놈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정말이지 요놈은 들을 때마다 모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멋진 앨범이다. 20세기 초에 발원한 재즈가 1960년대에 벌써 이런 식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잠깐 클래식 쪽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난 진정한 '현대음악의 개념'이 베베른에서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100년 전의 베베른이 어떻게 현대음악이냐고 따지는 난감한 짓은 부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분명 '현대음악'이 아니라 '현대음악의 개념'이라고 규정했다.) 쇤베르크가 12음 기법으로 기존의 화성체계를 뒤집었다면 베베른은 거기서 더 나아가 당시 무한히 발산해나가던 음악을 파편화시켰다. 베베른의 곡 중에는 황당할 정도로 짤막한 곡들이 자주 보이고 그런 곡들은 곡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끝나버려 순간의 인상만으로 청자의 기억에 남게 된다. 난 개인적으로 이러한 특성을 '음악에서의 서사를 지워버렸다'고 표현하곤 한다. 이는 주저리주저리 긴 이야기를 늘어놓은 말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물론 쇤베르크나 베르크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베베른만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12음 기법과 베베른의 이러한 시도가 어우러져 진정 '현대음악'이라 불릴만한 음악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화성으로부터의 자유와 '서사'로부터의 자유가 현대음악의 본격적인 시작이 아닐까...? 


 여기서 굳이 현대음악에 대한 내 생각을 장황하게 털어놓은 이유는 에릭 돌피의 이 음반이 웬만한 현대음악보다도 훨씬 세련되게 '현대스러운' 음악을 들려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듬은 종잡을 수 없고 곡의 구조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무조성과 조성은 혼재되어있다. 하지만 들려오는 음악은 무척이나 인간적이다. 음렬 음악에 쏟아지는 '기계적이고 수학적인 음악'이라는 흔한 비난은 에릭 돌피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에릭 돌피는 화성, 리듬, 형식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청자에게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위 앨범을 재즈계의 '클래식'으로 만든 원동력일 것이다.


 태동한 지 반세기도 되지 않아 재즈는 음악의 가능성을 클래식의 그것과 대등하게 넓힐 수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내가 현재 재즈보다 클래식을 더 좋아함에도 재즈가 보여준 가능성이 클래식이 보여준 그것보다 훨씬 다채롭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지금까지 재즈를 그렇게 많이 들어본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것이 내가 언젠가 클래식에서 무언가를 더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다음 탐구대상으로 재즈가 되리란 것을 벌써부터 깨닫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덧. 이건 어디서 얼핏 들은 이야기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도르노는 기존의 화성체계를 전복하려던 쇤베르크의 시도를 전통을 파괴하는 행위라 하여 지지하였으나 쇤베르크가 12음 기법을 만들자 그것이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행위라 비판했다고 한다. 나로서는 음악 자체보다도 이론에 관심이 많았던 학자가 할만한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되고. 어쨌든 아도르노의 생각과 가장 가까운 음악은 에릭 돌피의 음악이 아닐까. 아, 근데 아도르노는 분명 재즈도 비판했었는데... 물론 그가 알던 재즈는 스윙시대 빅밴드의 으쌰으쌰하던 그런 음악이었지만 말이다. (출처가 불확실해 삭제)


덧. 원글만 읽어보면 내가 음렬음악에 비판적인 입장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ㅠㅠ 위 음반을 들으며 글을 쓰다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와 베베른의 현악사중주로 이어가는 중인 걸... 이걸 다 들을때까지도 잠을 자지 못한다면 불레즈로 이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