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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벨러의 수크 - 아스라엘 교향곡




J.Suk : Symphony No.2, op.27 [Asrael]


Natioal Orchestra of Belgium

Walter Weller (cond.)


Fuga Libera



 국내의 클덕 대부분이 동일한 경로를 통해 이 곡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리흐테르 - 회고담과 음악수첩」이라는 책을 통해서 말이다. 책의 2부에는 리히테르 본인이 들은 실황이나 음반의 감상평이 실려있는데, 유독 리히테르가 이 곡을 듣고 호평을 한 일이 많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듣는 작곡가의 곡을 다른 누구도 아닌 리히테르가 극찬하고 있으니 어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 책을 읽은 대부분의 클덕들이 나와 같은 호기심으로 이 곡을 찾아 듣게 되었을 것이다.


 이 곡을 안다면 누구나 다 알만한 기본적인 사실을 먼저 말해보자. 곡의 작곡가 수크는 드보르작의 사위이다. 드보르작이 죽고 나서 사위는 장인을 기리는 교향곡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1년 후, 첫 세 악장을 완성해 피날레를 작곡하려 했을 즈음에 작곡가의 아내마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만다. 연속된 충격으로 인한 1년여의 방황 이후, 작곡가는 다시 곡으로 돌아와 피날레가 아닌 아내를 기리는 곡의 2부를 작곡하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이 곡은 작곡가의 장인과 아내 둘을 기리는 곡이 된다. 죽음의 천사 '아즈라엘'의 이름을 달고...


 곡 자체는 후기 낭만 교향곡의 또 다른 전형이라 할만하다. 삶과 죽음의 투쟁을 묘사한 1악장, 장례식이 거행되는 2악장과 섬뜩한 3악장을 지나면 곡의 2부이자 아내를 기리는 4악장이 시작된다. 그리고 마지막의 장대한 5악장. 악몽과도 같은 전반부를 지나 악장의 중간에 이르러 갑작스러운 장조로의 전조, 그리고 시작되는 죽은 영혼에 대한 위로... 영혼의 안식을 노래하며 곡은 마무리된다.


 어찌 보면 죽은 이를 기리는 레퀴엠과 같은 의미를 지닌 곡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곡 자체는 그리 비통하지 않다. 레퀴엠보다는 차라리 표제적 의미가 강한 교향곡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 정도로. 곡만 두고 보자면 말러의 교향곡과 가장 흡사하다는 느낌이다. 규모도 그렇고, 표제적인 의미가 강하다는 것도 그렇고, 화성이나 오케스트레이션 같은 것도 그렇고. 후기 낭만을 사랑하는 청자라면 절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교향곡이라 하겠다.


 내가 들어본 연주가 이 음반 하나라 연주에 대한 평은 하지 않겠다. 저번에 글을 썼던 코른골드의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이 곡 또한 근래에 여러 음반이 나오고 있다. 벨러, 매케라스, 벨로흘라베크, 키릴 페트렌코, 페셰크에다 리히테르가 극찬한 탈리히의 연주까지... 탈리히는 옛 녹음이라 음질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선택의 폭은 다양한 편이니 끌리는 지휘자나 오케스트라를 보고 고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아니면 그냥 싼 놈을 고르거나.


 이 훌륭한 곡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것 또한 리히테르의 업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