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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래틀의 브람스 피아노 사중주 1번 (쇤베르크의 관현악 편곡판)




J.Brahms : Piano Quartet No.1 in G minor, op.25 (orchestrated by A.Schoenberg)


Berliner Philharmoniker

Simon Rattle (conductor)


EMI



브람스 피아노 사중주 1번은 나의 실내악 첫사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들처럼 길렐스와 아마데우스 현사단의 DG 음반으로 처음 만났지. 불꽃이 튀는 듯한 4악장은 들어도 들어도 지금 다시 들어도 짜릿한 쾌감을 안겨준다. 신기한 건 아끼는 곡이면서도 다른 연주를 들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 아마도 감상실에 있던 요요마와 친구들의 연주가 너~무도 재미가 없어서 다른 연주를 찾아 들을 생각을 안 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첫사랑은 진행 중이다.

이 곡의 관현악판이 있다는 것을, 그것도 쇤베르크가 편곡했다는 건 감상실에서 음반을 뒤적이다 알게 됐다. 래틀의 말러 음반인가에 껴있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들뜬 마음으로 조심스레 음반을 들었던 기억이, 편곡을 싫어하는 나지만 '그래도 이건 좋다' 했던 기억이 난다.

래틀이 이 곡을 새로 녹음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결과물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고. 아무리 EMI 녹음이 발목을 잡는다 해도 오케의 클래스를 가릴 수 없는 법. 편곡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어색함도 매끈하게 잇는 래틀의 능력 또한 대단하고. 라벨의 전람회 편곡보다도 쇤베르크의 브람스 편곡이 더 훌륭하다 느끼는 건 나 혼자이려나.

물론 쇤베르크의 편곡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3악장부터는 곡이 단순해진다고 해야 하나... 3악장의 팡팡 터지는 타악기와 금관은 좀 촌스러운데다 마냥 신나기만 한 기분이다. 4악장에서도 마찬가지고. 짜릿함 증폭을 위해 다른 모든 걸 버린 느낌이라 100% 만족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우리 그냥 편곡에 완벽을 바라지 말자. 재즈도 아니고 편곡이 원곡을 넘을 수 있겠나...

여담으로 재작년 베필 내한 공연에서 래틀의 사인을 받아 더 각별한 음반. 공연 끝나고 거의 1시간 가까이 밖에서 기다려 얻은 사인. 베필 악장인 다이신 카지모토의 사인도 우연히 받을 수 있었고. 밖에서 기다리는데 카지모토가 혼자 나와 담배를 피기에 기다리다 사인을 쏙 받았지. 음반을 보더니 '어, 난 이건 안 했는데' 하면서 사인을 하기에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음반을 쏙 내밀며 '이건요?' 하니까 '어 이건 함ㅋㅋ' 하면서 거기에다도 사인을 해주더라. 유쾌하기도 하지...

다 쓰니까 피날레네. 진짜 편곡판의 피날레는 허황되지만 웃기다. 그냥 웃음이 나온다니까ㅋㅋ 다시 말하지만 '그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