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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15년 오페라 블루레이 결산

올해도 어김없이 음반 결산의 시간이 다가왔다. 올해 클덕질에서 가장 큰 발전이라면 역시 오페라 블루레이를 본격적으로 보게 된 것을 들어야겠다. 물론 멋모르고 파르지팔 블루레이를 샀던 적은 있지만, 그건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는 오페라 블루레이도 틈만 나면 질러주고 하루에 1막씩 오페라 영상물 보는 재미에 빠졌더랬다. 최근에도 프클에다가 오페라 블루레이 2개를 질러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고.



호세 쿠라의 팔리아치 + 카발레리아 루스티카 영상물은 올해 최악의 영상물... 기본적으로 노래를 너무 못해ㅠㅠ 두 오페라 모두 내가 무척 아끼는 곡들이라 기대감이 높았을 수도 있지만, 호세 쿠라는 참 들어주기 괴로웠다. 그렇다고 오케나 연출이 만회해주는 것도 아니라 총체적 난국... 두 오페라 영상물 중 유일하게 한글 자막이 있다는 장점을 제외하면 답이 없다.


바렌보임과 스칼라의 새 반지는 뭐라고 해야 하나. 바렌보임의 지휘는 왜 바렌보임이 바그너로 유명한지 확실히 깨닫게 해줬다. 보면서 순전히 오케 덕분에 짜릿짜릿한 쾌감을 여러 번 느꼈으니까. 성악쪽은 랜스 라이언 이 양반... 지크프리트에서 처음 듣고 엄청 난감한 기분이었다. '얘를 여기서 보고 신들의 황혼에서도 봐야해?'하는 착잡한 기분도 들었고. 계속 듣다 보니 적응이 되는 것도 같은데, 이게 적응이 된 건지 그냥 체념한 건지 모르겠어서;; 연출도 딱히 인상 깊지는 않았고. 뭐 그렇다.


카우프만과 게오르규의 토스카는 워낙 유명하니까. 이름값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해줬다고 하면 되겠다. 물론 난 카우프만이 왜 인기가 많나 이해를 못 해서 올해 최고의 영상물로 뽑을 수가 없었고. 게오르규는 영상물에서보다 사진에서 더 예쁘게 보인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흠?


취리히에서 한 누치, 베찰라의 리골레토는 아무리 레오 누치가 신들렸어도 베찰라가 다 말아먹으니 어쩔 수가 없더라. 질다가 사라진 후의 레오 누치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노래도 연기도 훌륭했지만, 옆에서 깐죽거리는 만토바 공작이 베찰라야... 랜스 라이언이나 카우프만이나 베찰라나 요즘 남자 성악가들이 이리 없나 싶기도 하고. 하...


가티와 빈필의 엘렉트라는 할 말이 없다. 알슈 오페라는 영상물로 보니까 더 어렵네. 기억나는 건 (지인의 표현을 빌려) 마지막 정육점 장면밖에 없다. 어려워...



리골레토, 엘렉트라, 토스카, 팔리아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반지 등의 영상물을 봤지만 올해 최고의 영상물은 바로 이 글라인드본에서의 피가로다. 로빈 티치아티 지휘의 계몽시대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은 이 영상물은 시대연주 + 배역과 외모의 훌륭한 싱크로 + 듣기에 지장 없는 성악 + 보기에 즐거운 연출이 어우러져 제일 큰 만족감을 준 영상물이 되었다. 나처럼 성악에 크게 신경 안 쓰고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적절한 영상물이 있을 수가... 그렇다고 노래를 못 불렀다는 건 아니다. 모두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들으면서 거부감이 들거나 하는 배역은 없었으니까. 어쨌든! 오래도록 모페라에 재미를 못 붙였었는데, 이거 덕분에 심리적 거리감이 확 준 것도 큰 소득이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올해의 best 영상물로 선정!


올해에는 영상물 볼 시간이 얼마 없을 것 같다. 방학도 여름방학 말고는 없고. 우울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