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연말이고 하니 올해의 음반을 정리할 시간. 하지만 그 전에! 이번에는 올해의 음반에서 아깝게 떨어진 음반들 + 오페라 결산 +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음반들을 따로 모아 글을 올려볼까 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다 몰아서 쓰면 분량이 너무 길어져서? 그럼 하나씩 가보자.
우선은 올해의 음반 후보에서 아깝게 떨어진 음반들 4장이다.
굴드의 브람스 독주곡 음반은 의외의 즐거움을 줬다. 굴드의 연주 스타일과 음색은 브람스와 완전 상극이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그래도 좋아! '야한' 발라드와 랩소디라니! 이상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인테르메초는 어떻고! ㅋㄱ의 어떤 멍청이를 비롯한 과도한 굴드빠들의 만행으로 잠시 굴드를 기피했었지만, 번스타인처럼 나의 감상 지평을 넓히기 위해 파볼 가치가 있는 연주자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음반이다.
스즈키의 바흐 모테트는 역시나 스즈키라고 할까. 바흐의 주요 종교음악을 스즈키의 박스로 입문한 나이기에 모테트도 믿고 지를 수 있었다. 다른 시대연주들과도 구분되는 독특한 악기의 음색, 일본 음식이 생각나는 정갈한 합창이 어우러지니 멋진 신세계! 내가 성악곡과 덜 친해 best 선정에선 밀렸지만, 그래도 즐겁게 들은 음반이라 할 수 있다.
가티의 레스피기 로마 삼부작은 좀 웃긴 경우인데... 내 첫 로마 삼부작이 데프리스트와 오레건 심포니의 음반이었다. 매번 들으면서 만족을 못 하다가 가티로 들었더니 다시 또 멋진 신세계! 이제야 로마 삼부작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처음 들었던 음반의 반작용인 느낌이라;; 거 참;;
마지막으로 민코프스키의 라모 상상의 교향곡. 글쎄 얘는 올해 처음 산 음반이라 불이익을 받은 경우가 아닐까 싶다. 분명 강력한 올해의 음반 후보였는데, 1월 1일에 산 음반이란 장벽을 끝끝내 넘지 못하고야 말았다. 좋았던 기억은 갈수록 흐릿해져만 가고... 그래도 이 음반은 민코프스키의 도전적인 시도가 참신한 결과물로 이어진, 클래식계에 귀감이 될만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 미안해요 민코프스키씨...
MTT의 번스타인 West Side Story는 다른 게 아니고 그냥 음반이 예뻐서... 요즘 이렇게 정성 들여 만드는 음반 보기가 흔치 않아서 사놓고도 감동했더랬다. 하긴 예전에 MTT 말러 하나 샀을 때도 만듦새가 워낙 좋아 감탄했었지. 만듦새만큼이나 가격이 비싼 건 눈물 나지만. 정작 곡이 그냥 저냥이라 best에 끼지는 못하겠고 그냥 이정도로만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올해의 오페라 음반 지름. West Side Story도 그냥 오페라라고 쳐주기로 하자. 베르테르 정도를 제외하면 유명하고 대중적인 곡들을 접했다고 해야겠지. 바그너는 이제 관심이 덜 가는 명가수, 탄호이저만 남았다. 알슈는 살로메 엘렉트라까지 갔으니 내년엔 장미의 기사로 가야지. 베르디는 영 내 취향이 아니지만, '운명의 힘'과 '돈 카를로'로 넘어가야겠고. 도니제티랑 벨리니는 정말 즐겁게 들었으나 여기서 잠시 멈춰줘야겠고. '연대의 딸'이나 '몽유병'으로 넘어갈 필요까진 없잖아? 프랑스 오페라는 마스네의 '마농'이나 구노의 '파우스트' 같은 쪽으로 넘어가야지. 내년에는 브리튼과 베르크와 야나첵의 오페라, 피델리오, 박쥐 같은 쪽으로도 넘어가 보자. 브리튼과 야나첵의 오페라는 덕질 마지막 순간에 깊게 파게 되겠지만, 피터 그라임스나 예누파로 맛보기를 보는 것도 괜찮을 거다.
올해 드디어 페트렌코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사이클이 마무리됐다. 11번부터 시작해 클덕질을 하며 하나하나 사모으는 재미가 있는 사이클이었지. 연주 자체도 훌륭하고 낙소스 주제에 녹음에서도 선방해주며, 최우선적으로 추천해줄 만한 쇼교 전집이 완성됐다 하겠다. 쇼교는 복어같다고나 할까. 특유의 독을 제압하지 못하면 대망이지만, 그 독을 적절히 사용할 경우 유일무이한 신랄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라고 복어 구경도 못 해본 사람이 말합니다). 휘몰아치기만 하는 대다수 지휘자는 독에 먹힌 경우고 하이팅크는 독을 완전히 빼낸 경우라고나 할까. 코프만 같은 친구는 독을 빼내다 맛까지 버린 경우고. 페트렌코는 적재적소에 독을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을 지녔고 필요할 때 말초신경을 자극해낸다. 단지 악단의 한계로 무미건조한 소리가 들릴 때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남지만... 모든 걸 다 바랄 수는 없는 법이다.
낙소스에서 쇼스타코비치를, EMI에서 라흐마니노프를 끝낸 페트렌코. 다음은 제발 프로코피예프로 가줬으면. 뻔하지만 차이코프스키도 괜찮고. 만프레드 교향곡으로 이름을 알린 지휘자기도 하니까. 재밌는 사실은 내가 페트렌코를 정말 좋아하면서도 그의 비 러시아 연주에는 관심이 안 간다는 거? 페트렌코의 브람스, 베토벤, 말러 이런 쪽은 상상해봐도 시큰둥해진다. 희한하다니까.
그리고 올해는 또 길렌의 말러 전집을 모두 모을 수 있었다. 전집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주고 모아야 했지만, 전집에는 길렌 말러 전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커플링 된 곡들이 전부 빠져서 어쩔 수 없었지. 아이브즈, 쿠르탁, 신 빈악파 3인방, 불레즈, 슈레커 같은 작곡가들을 말러와 함께 만날 수 있다니 일석이조! 연주가 좋기까지 하니 이건 뭐...
커플링 된 곡들이 예뻐 죽을 만큼 참하긴 하지만, 말러 연주도 빠지질 않는다. 2번, 7번, 9번, 10번은 아무 부담 없이 누구에게나 추천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대지도 성악만 포기하면야 괜찮고. 1번, 5번, 8번은 사무적이라는 느낌이지만 전집이니 다 잘할 수는 없는 노릇. 3번은 무난하게 잘했다면 4번은 약간 아쉽다고 해야 하나. 뭐 그렇다.
이제 당분간 말러는 쉴 생각이다. 이번 정마에와 서울시향의 9번 정도만 제외하면. 물론 요즘도 좋은 말러 녹음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길렌 모으면서 많이 지쳐서... 불레즈나 베르티니 정도가 먼저 생각나지만, 나중에!
블로그에 소홀하다 갑자기 긴 글을 쓰려니 엄청 어렵더라. 의욕도 안 생기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14년 best 글은 내년으로 넘겨야겠다ㅠ 요즘은 아이패드로 하스스톤하느라 바쁘니 원;; 이거 현질을 안 할 수가 없겠는데, coc를 1년 넘게 무과금으로 한 내 자존심이 그걸 용납하지 않네. 아이고 머리야;;
이제 곧 2015년. 참 긴 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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