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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정명훈의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4번




D. Shostakovich : Symphony No.4

Philadelphia Orchestra
Myung-Whun Chung (cond.)

Deutsche Grammophon (DG)


한 사람의 클덕으로서 매번 이 음반을 들을 때마다 진한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만약 DG가 90년대 계획했던 정명훈의 쇼스타코비치 사이클을 취소하지 않았다면...?
DG의 야심 찼던 계획은 오직 단 한 곡의 녹음만을 남기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취소되고 맙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교향곡 4번만을 남기고 말이죠.


국내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 음반의 존재는 '전설적'인 존재였습니다.
여기저기 좋다는 얘기는 들려오지만 국내에서는 도무지 구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일본에서나 어떻게 구할 수 있었고, 아마존에는 라이센스를 딴 '어설픈' 음반만이 존재했을 따름이죠.
말 그대로 '열혈'매니아들이나 찾아 들으며 입소문으로만 떠돌던 녹음이었습니다.
작년 발매된 정명훈 DG 전집에 수록되기는 했으나 이걸 위해 박스셋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그랬던 녹음이 이렇게 정식으로 재발매되다니 무척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알라딘에 가보니 이 음반이 알라딘에서 단독 판매로 라이센스 되었다고 하더군요.
당연하게도 국내 클래식 커뮤니티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며 소리소문없이 쭉쭉 팔리고 있습니다.
좀 놀라웠던 것이 이 음반이 심지어 알라딘 음반 부문 주간 베스트에서 1위를 차지하더군요.
클래식 한정이 아닌 모든 장르를 통틀어 1주간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라는 소리입니다.
국내 클래식 음악 소비층이 그만큼 굳건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500조 한정인 음반이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에서 음반이 안 팔린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죠.
어느 쪽이건 저로서는 무척 유쾌한 일이지만요.

분명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4번은 대중에게 익숙한 곡이 아닐뿐더러 쉽게 받아들여지는 곡도 아닙니다.
어찌 됐든 1시간이 넘는 대곡인데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자체가 브루크너, 말러와는 다른 또 하나의 난관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힘겹게 말러와 브루크너를 정복해 의기양양하던 애호가들이 다시 '좌절'을 겪는 흔한 경로이기도 하죠.
'으아 들어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다시 나오게 하는 장본인이기도 하고요.

그렇더라 하더라도 분명 도전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쇼스타코비치는 가장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 중 하나고,
4번은 그중에서도 최고를 다투는 곡 중 하나니까요.
쇼스타코비치의 맛을 안 순간, 그가 교향곡을 15곡이나 남겨줬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될 겁니다.

결론을 내보죠.
만약 이 글을 읽으신 분 중에
1. 나는 쇼스타코비치를 이미 좋아했지만 이 음반이 없다.
2. 나는 클래식은 듣지만 쇼스타코비치를 잘 모른다. 하지만 관심은 있다.
3. 나는 클래식은 잘 모르지만 새로운 음악을 듣고자 하는 욕구로 충만하다.
4. 나는 좋은 오디오가 있고 오디오의 성능을 발휘하는데 큰 관심이 있다.
5. (소수겠지만) 나는 정명훈 빠다.
에 해당하시는 분이 있다면 마음 편히 이 음반을 지르시면 됩니다.
최고의 곡, 압도적인 연주, 최상의 녹음이 결합한 음반이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정명훈 지휘자의 가장 훌륭한 녹음 셋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와 더불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다.
그냥 지르시면 됩니다-_-ㅋ 





더치커피를 마셔 카페인의 위력에 새벽을 뒤척이다 충동적으로 쓴 글.

디비디프라임에 올렸다가, 고파스에 올렸다가, 알라딘 내 서재에 올렸다가, 이젠 블로그까지.

수년 만에 쓰게 된 글이라 보존해둬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