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프레스토 클래시컬에서 주문한 불레즈 전집 박셋이 도착했다. 4일 발송 메일을 받아 오늘 받았으니 오는데 9일이 걸린 셈인데, 프레스토 클래시컬의 배송이 대충 10일 정도 걸린다는 걸 감안했을 때 밀리지 않고 제대로 왔다고 봐야겠지. 비온디의 비발디 박셋을 다 듣고 다음 박셋이 필요한 시점에 딱 도착해 다행이기도 하고. 아니, 불레즈 박셋의 출시일을 알았을 때 배송일까지 고려해 딱 맞춰 오게 모든 걸 고려한 나의 덕심(-_-)이 대단한 건가. 자연스레 다음 박셋으로 넘어갈 수 있게 비온디 박셋을 고른 거에서부터 시작해서. 5만원 맞추기 신공도 그렇고 난 쓸데없는 것에서 완벽을 기한다니까;;
박스셋 뒷면 사진의 아랫부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박셋은 DG만이 아닌 텔덱, 프랑스 문디, 나이브 등등의 음원까지 모아 구성된 박셋이다. 박스셋 소개에서 불레즈 자신이 엄선한 녹음이라고 밝힌 게 괜한 말이 아니었던 셈. 앞면에는 Complete Works라고 써놓고 뒷면에는 Work In Progress라고 쓴 것도 재밌고. 아무래도 불레즈가 천수를 누리고 있으니 뭐가 더 튀어나올지 몰라 뒤에 덧붙인 모양이다.
박스셋은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이케이스 하나하나에 13장의 CD가 들어있는데, 각각의 종이케이스는 박스셋 커버와 똑같은 불레즈의 사진에 숫자만 색깔을 바꿔 13장 들어있는 무성의한 모습. 종이케이스 뒷면을 보면 트랙을 확인할 수 있게 해뒀는데 이건 그나마 고마운 배려라 할 수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두툼한 북클릿. 영어와 불어로 쓰인 북클릿인데 80쪽이 넘는 분량이 영어로 된 작품설명에 할애되어있다. 어떤 시대보다도 작품설명이 감상에 도움이 되는 현대음악이기에 참으로 감사한 일이고. 또한 불레즈의 인터뷰가 실린 13번째 CD의 대화록이 북클릿에 실려있어 불레즈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직은 읽어보질 않아서 자세히 설명하기는 그렇지만;;
불레즈의 곡을 잘 아는 편은 아닌지라 박셋에 실린 연주를 설명하기에는 제약이 있지만 내 눈에 흥미로워 보이는 몇몇 사실들만 지적해볼까 한다.
불레즈의 피아노 소나타는 3개가 있는데 1번은 에마르, 2번은 폴리니, 3번은 점파넨의 연주로 실렸다. 1번은 에라토에서 나온 불레즈 음반에서의 에마르 연주, 2번은 DG에서 나온 전설적인 폴리니의 바로 그 연주, 3번은 DG에서 불레즈 소나타 전곡 앨범을 낸 점파넨의 연주이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3번은 점파넨 말고는 대안이 없어 실린 느낌이 들어 묘한 기분이다. 아, 에마르는 텔덱에서 불레즈의 플룻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를 녹음했는데 그 연주 또한 여기에 실려있다.
신기하게도 불레즈의 인기곡(?)인 파생2의 경우 DG에서 나온 망치 음반에 함께 실린 짤막한 버전이 아닌 40분이 넘는 확장 버젼으로만이 실려있다. 내지에 따르면 2010년 불레즈와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실황이라는데, 이전의 짤막한 버젼이 아예 박셋에 실리지 않은 덕분에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파생 음반은 모셔둬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좋게 생각하면 옛 버젼의 CD를 미리 가지고 있는 게 다행일지도...
12번째 음반은 보너스 CD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인 녹음'이라 명명되어 있는데, 여기에 실린 연주들 또한 불레즈빠들(얼마나 있을까 의문이다만ㅠ)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잃어버린 망치' 1964년 녹음! 널리 알려진 DG의 망치 연주(당연히 박셋에 실려있다)보다 6분가량 빠른 연주인데, 거진 40년 젊었던 불레즈의 망치가 어떨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또한 '물의 태양' 2번째 버젼(박셋에는 4번째 버젼 또한 실려있다)이 실려있고 플룻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또한 1956년의 새로운 연주로 실려있다.
비록 종이케이스의 디자인이 아쉽기는 해도 이만하면 DG에서 우리 시대의 위대한 거장에게 충분한 존경을 표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곡가로서의 불레즈보다 지휘자로서의 불레즈에 더 친숙한 나지만 이 박셋을 계기로 작곡가 불레즈와 더 친해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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