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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쉬프의 바흐 평균율 신반(ECM) 내지 번역




J.S.Bach : The Well-Tempered Clavier


Andras Schiff


ECM



 새벽에 할 일이 없어 쉬프의 평균율 신반에 실린 쉬프 본인의 글을 번역해봤다. 근데 나의 번역 수준이 너무 떨어져 내 번역을 올리지는 못하겠고 내 번역을 검토해준 영문과 선배님의 번역을 올리기로 결정. 원문을 보낼 때 내가 만든 오타 때문에 잘못 번역된 부분을 수정했고 임의로 글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손 본 부분이 가끔 있음을 알린다. 역주는 하나를 제외하고는 내가 직접 단 거고.


 이 자리를 빌어 영문과 민oo 선배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Senza pedale ma con tanti colori

페달의 사용 없이, 그러나 다양한 색깔로


 바흐를 연주하는 데에 피아니스트들은 여러 근본적인 질문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대답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자면, 평균율을 연주하기 위한 ‘올바른’ 악기는 무엇인가? 클라비코드, 하프시코드, 오르간, 페달-하프시코드? 바흐 본인이 몰랐던 악기로 평균율을 연주하는 것이 괜찮은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구에게 그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 특정 전주곡이나 푸가의 올바른 템포와 악곡의 성격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해당 악곡의 셈여림 범위는 얼마나 되며, 그 범위는 악기나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가? 특정 악구나 푸가 주제를 어떻게 조음(調音)할 것인가? 더 많은 장식음이 필요한가? 아니면 장식음을 더 적게 사용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가? 어떤 판본이 최고의 판본인가?


 피아니스트는 이러한 질문, 혹은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지성, 그리고 C.P.E. 바흐가 말한 ‘buon gusto’, 즉 좋은 취향이 필요하다. 대답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며, ‘모든 사람이 좋아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이것이 바로 내가 이 곡을 연주하는 방식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서스테인 페달은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며, 이는 비단 바흐 음악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주자는 이 서스테인 페달이라는 놀라운 장치를 사용하여 댐퍼를 피아노 현에서 들어 올려 누르는 건반 음이 자유롭게 진동하도록 할 수 있다.


 베토벤은 최초로 서스테인 페달의 사용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위대한 작곡가이다. 그의 C#단조 소나타 Op. 27-2(역주: 월광 소나타) 1악장 전체는 ‘senza sordini’로, 즉 서스테인 페달을 사용하여 댐퍼를 올린 채로 연주하도록 지시되어 있다. 그 효과는 마법과도 같아 화음이 서로 섞이면서 진정 혁명적인 울림을 만들어낸다. 작곡가가 요구하는 것은 피아니스트가 따라야 하며, 이것이 합리적이다. 어찌 됐든 베토벤이 꽤나 위대한 음악가였으며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을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피아니스트의 99퍼센트가 베토벤의 지시를 완전히 무시하고 화음이 바뀔 때마다 애써 페달을 갈고 있다.


 왜? 이 사람들의 주장은 페달 사용으로 인한 효과가 베토벤의 포르테피아노에서는 다르게 들릴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베토벤의 브로드우드(역주: 베토벤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포르테피아노)를 쳐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다. 당연히 쳐 본 적도 없이 아는 척하는 것일 뿐이다. 뭐 나는 이 사람들과는 의견이 다른데 나는 브로드우드를 연주해보고 녹음(클릭)도 해봤기 때문이다. 소리와 음량, 작동원리는 다를 수 있지만, 실질적인 음악적 아이디어는 같다. 악기의 종류와 관계없이 베토벤이 의도한 불협화음은 여전히 불협화음이다.


 그런데 이것이 대체 바흐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상당 부분 관련이 있다. 서스테인 페달은 당시의 어떤 건반악기에서도 바흐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즉, 당시에는 페달이 없었으므로 바흐가 쓴 곡은 페달 사용 없이 연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흐의 곡은 현대 피아노에서도 8개의 손가락과 2개의 엄지만을 사용해서 연주할 수 있다. 발은 사용할 필요가 없다. (한 가지 예외는 평균율 1권의 A단조 푸가이다. 이 곡의 마지막 마디는 두 손만으로 연주할 수 없는데, 이는 이 곡이 오르간을 위한 곡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는 세 개의 페달 중 가운데 페달인 소스테누토 페달의 사용을 권할 만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흐를 연주할 때 ‘피아노의 꽃(crown jewel)’인 페달을 무시해야 하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서스테인 페달은 특히 음향이 건조한 장소에서 반향(反響)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재치 있고 신중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무분별하게 페달을 사용하여 음악에 해를 가하는 위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피아노는 계속해서 오른발로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하는 자동차가 아니다. 현악기 연주자나 가수가 모든 음정에 대해 계속해서 비브라토를 사용한다면 도저히 들어줄 수 없을 것이다. 피아노의 페달은 현악기 연주자의 비브라토와 같다. 페달이나 비브라토의 사용에는 주의와 통제, 그리고 절제가 필요하다.


 바흐에게 소리의 명확성은 필수적이며, 대위법과 성부 진행의 순수성이 자명해야 하므로, 소리가 죽거나 뒤섞여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 규칙이 준수되는 한, 신중하게 페달을 사용하는 것을 금할 것은 없다. 하지만 손쉽게 해답을 찾는 것이 음악에 이로운 일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피아노에서 완벽한 레가토란 불가능하며, 다만 완벽한 레가토를 내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들 뿐이다. 두 손만으로 레가토를 시도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지만, 시도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 바흐는 분명히 자신의 음악을 손쉽게 연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이는 연주자에게나 청취자에게나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최근 나의 동료이기도 한 탁월한 피아니스트(선배 曰 이거 머레이 페라이어 아님? ㅋㅋ)가 나의 이러한 ‘절제’에 대해 질책했다. 그의 주장은 과거의 모든 위대한 피아니스트들도 바흐를 연주할 때 페달을 많이 사용했으니, 우리도 그 선례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이러한 추론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위대한 음악가이자 저명한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故 조지 말콤은 나에게 페달 없이 바흐를 연주하되 순수성의 기쁨을 즐기라고 가르쳤다.


 언젠가 기교가 뛰어나고 성공한 젊은 피아니스트가 조지 말콤을 찾아와 당신을 위해 바흐의 D장조 토카타를 연주해도 되는지 물었다. 말콤이 동의하자 그 젊은 친구는 건반 앞에 자리를 잡고 오른발을 페달 위에 올려놓고 팔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말콤이 갑자기 외쳤다. “멈춰!” 이 가여운 친구는 “아직 음 하나도 연주하지 않았다고요!”라 말했고, 말콤이 “그렇지. 하지만 막 연주하려고 했잖아.”라 하였다고 한다.


 나에게 바흐의 음악은 흑백이 아니다. 바흐의 음악은 풍부한 색채로 가득 차있다. 내 상상 속에서 각 조성은 하나의 색깔에 해당한다. 평균율의 각 24개 장·단조의 전주곡과 푸가는 이러한 화려한 환상을 누릴 기회를 준다. 태초에 순진무구함만이 있었고 따라서 C장조는 (그리고 C 장조의 모든 흰건반이) 눈과 같은 순백이라 상상해보자. 두 권의 마지막 곡은 B단조이고 이는 죽음의 조성이다. 1권의 B단조 푸가를 B단조 미사의 Kyrie와 비교해보라. 이는 검은 음정이다. 이 양극 사이에 모든 다른 색깔이 있다. 먼저 노랑, 주황색, 황토색 (C단조에서 D단조까지), 파란색의 모든 색조(E-flat장조에서 E단조까지), 초록(F장조에서 G단조까지), 핑크와 빨강(A-flat장조에서 A단조까지), 갈색(B-flat장조에서 B-flat단조까지), 회색(B장조), 그리고 마침내 검정까지.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고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음악이 단순한 음과 소리의 나열 이상이라 믿게 된다면, 약간의 환상은 환영받을 수 있다.


Andras Schi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