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단번에 몰아서...
- 짤막하게 하겐 사중주단. 공연 이후 '앙상블이 별로다, 예전 에머슨의 압도적인 공연과 비교된다'는 후기가 많이 보인다. 뒤에 말에는 동의해도 앞에 말에는 약간 동의하기 힘든 것이... 하겐의 연주는 사인 받은 음반 하나에서 들어본 게 꼴랑 다이지만 얘네 연주 스타일 자체가 괴랄한 것 같아... 옛날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저 음반에선 한 프레이즈 내에서도 가장 큰 목소리 내는 악기가 중간에 바톤 터치를 하질 않나, 툭하면 성부를 뒤범벅 시키질 않나, 여차하면 악기 하나의 볼륨을 확 죽이질 않나 그런다고... 이런 걸 해체주의라고 해야 하나-_- 곡 자체가 빡빡한 1부 중기 베현사에선 이런 스타일이 ??? 였는데(1바이올린 음정이 자주 엇나간다는 문제까지 겹쳐서) 2부 후기 베현사에선 좀 먹히더니 대푸가에선 엄마야ㅠㅠㅠㅠ 쇼현사 9번에다 (하겐이 1부에서 했던)베현사 9번의 4악장으로 만루홈런을 때린 에머슨보다는 충격이 약했지만 대푸가 하나로 모든 걸 용서해줄 수 있지 않을런지. 짝짝짝!
- BBC심포니는 정말 좋았다. 악단이나 지휘자나 초1류와는 거리가 멀지만, 공연을 보니 좋은 오케고 좋은 지휘자라는 걸 알겠더라. 엘가의 위풍당당 서곡을 영국 지휘자와 영국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으니 손발이 오글오글, 용재 오닐의 월튼 비올라 협주곡은 그냥 그냥... 연주보다도 용재 오닐의 화려한 옷과 지나치게 오케에 굽신굽신하는 태도(성품이 좋은 건지 오케가 자신에게 과분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위풍당당 이후 다시 내 손발을 오글오글하게 만든 '섬 집 아기' 앵콜까지. 하이라이트는 2부였는데 브리튼 피터 그라임즈 4개의 바다 전주곡은 예전 뵐져 뫼스트+클리블랜드의 무색무취한 연주를 뺨따귀 때리는 호연이었고(공연 전 집에서 이 곡을 복습하는데 새삼 무척 좋은 곡이라는 느낌이 들더라. 브리튼을 파야 하나)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역시... 어느 누구도 에니그마를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위대한 곡이라 여기지 않겠지만 꼭 위대해야만 좋은 곡은 아니잖아? 진부하지만 님로드 나올 때는 울컥했다고. 이 수준의 실연을 들었으니 에니그마는 이제 여한이 없다. 공연에 진~짜 만족해 앤드루 데이비스와 (덤으로) 용재 오닐의 사인을 받고 싶었지만(대기실 앞에 진을 쳐서!ㅋㅋㅋ) 버스 시간 때문에 후다닥 나간 건 아쉬웠고ㅠㅠㅠ 흑흑흑흑흑ㅠㅠ
덤으로 이번엔 합창석 정가운데 블록 제일 뒷줄에 앉았는데... 오른쪽에서 바이올린이 들리고 왼쪽에서 첼로가 들리고 금관이랑 타악기 소린 엄청 크고 이러니까 적응이 안 되더라. 그렇긴 해도 원래 합창석보단 3층을 선호했었는데 이젠 합창석 다녀야지~ 합창석의 위대함을 이제야 알다니ㅠㅠ
- 그리고 어제 아르스 노바 3. 아르스 노바도 진작부터 다닐걸ㅠㅠㅠ 리게티 '선율들'은 내가 우려했던 대로 내가 안 끌리는 타입의 리게티 곡이었다. 리게티의 연습곡이나 무지카 리체르카타, 피협 같은 곡은 미치도록 좋은데 다른 관현악곡들은 GG... 두 번째 파람 비르라는 작곡가의 곡은 가장 인상이 덜 남은 곡이어서 패스... 세 번째 조현화 작곡가의 '마법사의 제자'는 들으면서 무척 귀엽고 재밌는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저런 제목이었어ㅋㅋㅋ 하지만 진짜는 2부에. 이름만 듣던 뮈라이의 곡은 최고더라. 공연 처음부터 무대에 놓인 맥북과 키보드가 신경 쓰였었는데 뮈라이의 곡에서 열심히 쓰이더라. 녹음된 소리를 키보드로 틀어 무대 위 연주자들이 내는 소리와 어울리게 하는 방식으로. 스펙트럼 음악이 이런 거였구나! 뮈라이의 곡은 지루할 틈을 전혀 주지 않아 '엄마야, 엄마야' 이러면서 들었다. 우와 최고! 마지막 메시앙의 곡은 '기'가 협연한 '천상의 도시의 색채'. 처음 5초만 들어도 메시앙 곡인 줄 알겠더라. 나 같은 막귀도 화성 사용으로 메시앙인 걸 알겠으니;;; 편성도 무척 독특했는데 지휘자 왼편에는 피아노, 정면에는 실로폰 3대, 오른쪽에는 클라리넷 주자 3명;;;; 현악기는 없고 금관과 타악기 주자들이 뒤편에 있었다. 결론은 메시앙 최고!!!! 요 곡이 담긴 음반도 빨리 질러야지....
이건 여담. 공연 끝나고 나가는데 바로 앞에 진은숙샘이 딱!!!! '피아니스트가 잘생겨서' 같은 얘기를 동행과 나누시더라. 로비에서 기 사인을 받으려고 대기하는데 바로 앞에 진은숙샘이 돌아다니고 뮈라이가 돌아다니고 오늘 지휘자가 돌아다니고 페뤼송이 돌아다니고... 유명 작곡가들이 코앞에 있으니까 떨려서 혼자 두근두근하며 흘낏흘낏. 사인이라도 받고 사진이라도 같이 찍고 그러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어서ㅠㅠㅠㅠ 기는 제일 마지막에 나왔는데 다행히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먼저 사인을 받고 있기에(그 사람은 사인펜도 미리 준비했더라! 내심 펜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나도 덩달아 사인받았고. 내가 진은숙샘이랑 뮈라이 보고 엄청 감동해 접신한 표정으로 사인받았는데 기가 이상하게 생각했을 듯;; 난 아무리 연주자가 훌륭하고 리히터니 호로비츠니 출동한다 해도 레스피기 선에서(레스피기 미안..) 가뿐히 정리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작곡가들을 눈앞에서 보니 무척 떨리더라. 옛날 베토벤이나 브람스 같은 작곡가를 만난 일개 애호가가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사인도 못 받고 사진도 같이 찍자고 못 한 건 눈물나게 아쉽지만 이정도로 만족해야지..
금요일 아르스 노바에서 들을 뮈라이의 피협이 기대된다. 뒤티외 메타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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