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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클덕질 잡담

1. 


 요즘 심심해서 하는 일 중 하나는 바그너 지름 계획 짜기다. 언젠간 압도적인 가성비를 자랑하는 바이로이트 박스를 사게 되겠지만, 32장이나 하는 박스를 사기 전에 먼저 다른 연주들로 곡에 충분히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내 음악 감상 특성상, 바이로이트 박스는 4번째 순서로 오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럼 각각의 오페라에서 지를 3개의 음반은 어떻게 정하느냐? 우선은 개나 소나 누구나 추천하는 음반 하나로, 다른 하나는 4월님의 무지막지한 뽐뿌질의 영향으로 지글지글한 (주로 50년대의) 실황 음반을, 다른 하나는 최신 연주를 선호하는 내 취향을 반영한 21세기 연주로 골라볼 계획이다. 물론 지금 시대가 바그너 성악가가 멸종된 시대라는 얘기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난 아직 (전적으로 나의 무지 덕분이지만) 성악 쪽에 무척이나 관대하기에 성악진의 수준 문제로 괴로워할 가능성은 적을 것 같다.


 그래서 대충 계획을 짜봤는데...


 

화란인

탄호이저

트리스탄

로엔그린

파르지팔

명가수

반지

개나 소나

(DG)

솔티

(Decca)

 카라얀 (EMI) /

클라이버 (DG)

쿠벨릭

(DG)

카라얀

(DG)

쿠벨릭

(Arts)

솔티

(Decca)

지글지글 실황

크나

(55)

??

자발리쉬

(58)

 마타치치 (59)

크나

(57)

크나

(60)

카일베르트 (55)

21세기

민코프스키

??

파파노

비쉬코프

게르기예프

??

틸레만

(08? 11?)


 (진한 글씨는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들이다)


 이것저것 뒤져보며 계획을 짜봤지만 몇몇 문제점들이 있다. 물론 깔끔하게 떨어지는 화란인, 로엔그린, 반지(틸레만의 어느 연주를 고르느냐가 문제지만)는 예외.


 내 계획 이행의 가장 큰 문제는 21세기 바그너 녹음의 절대적 양의 부족이다. 뒤져본 결과 영상물이라면 모를까 음반으로 나온 21세기 바그너 오페라는 우울할 정도로 수가 적었다. 다른 오페라들은 어떻게든 후보를 정할 수 있었지만, 명가수랑 탄호이저는 어쩌라고?? 최근 펜타톤에서 나온 야노프스키의 녹음이나, 탄호이저의 경우 2001년 바렌보임의 녹음이 있지만 글쎄... 바렌보임은 그의 바그너 오페라 전체가 박스로 묶였고 야노프스키도 그럴 가능성이 높거늘 어찌 저것들을 지른단 말이야? 관대하게 90년대 이후 녹음으로 범위를 넓혀봐도 솔티의 연주가 있는 명가수와는 달리 탄호이저는 그것도 없고... 뭐 내가 바그너 오페라 음반들을 3개씩 가지고 있으려면 최소 5년은 걸릴 테니(내가 꾸준히 클덕질을 한다는 가정하에!) 너그럽게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도 앞으로 명가수나 탄호이저의 음반이 나올 일이 있을지 심각하게 의문이기에...


 다른 문제는 또 이놈의 탄호이저. 4월님이 탄호이저를 버리셨기에 찰진 탄호이저 실황 음반 정보를 구할 길이 없다. 내가 뒤져봤자 실황반이 뭐가 있나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할 테고. 대충 ㄱㅋ 보니 55년 클뤼탕스 음반이 있긴 한데 저거 괜찮으려나... 알 도리가 없으니 제대로 갑갑한 노릇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트리스탄의 개나 소나 음반. 트리스탄의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음반은 당연히 뵘이지만, 뵘 DG반은 바이로이트 박스에 실려있기에 제외된다. 뵘 말고는 카라얀이나 클라이버일 텐데 뭐가 좋은 선택일까? 나야 뭐로 들어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미묘하게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 클라이버의 DG 전집 박스를 산다면 클라이버로 가겠고 그게 아니라면 카라얀으로 가려나? 모르겠다.


 이렇게 미리미리 정해둬도 어디서 혹하는 음반 평을 보면 바뀔 테지만... 난 이런 걸 다 짜두지 않으면 안심 못 하는 인간인지라-_-;; 올해는 트리스탄 로엔그린은 필수로 하나씩 사고 탄호이저와 명가수는 상황 봐서...



2.


 다음 음반 고민은 바흐 칸타타. 요즘 스즈키의 모테트를 듣는데 생각보다 곡이 마음에 들어 내친김에 본격적으로 칸타타를 파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칸타타 음반은 Archiv에서 나온 가디너의 140 147 음반 꼴랑 하나. 자, 그럼 바흐의 방대한 칸타타는 누구로 가야 하는가? 만약 낱장으로 전곡을 듣겠다면 스즈키 가디너 쿠프만이라는 선택지가 있다.


 


 단


 스즈키

스즈키 좋아요!

수난곡과 모테트로 스즈키의 해석에 이미 익숙

개인적으로 스즈키의 바흐에 모두 만족

낱장 폐반 걱정이 덜한 BIS

오랜 시간 진행되어 생긴 해석의 변화

10장씩 묶어 나온 한정 박스를 놓침ㅠ

다 모을 수 있을까??


 가디너

가디너 좋아요!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멋진 커버

몰아서 진행된 덕에 일관된 해석

 몰아서 진행된 덕에 생긴 연주 편차

폐반의 우려

다 모을 수 있을까?


 쿠프만

 착하게도 3장씩 묶어 박스를 내줌

유튜브에서 샘플 들어보니 괜찮음

잘 모르는 사람

 3장씩 묶인 박스의 가격적 메리트 제로

폐반의 우려

잘 모르는 사람

다 모을 수 있을까?



 보다시피 유력한 후보들 각자 나름의 장단이 있다. 하지만 폐반의 우려와 50장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내가 다 모을 수 있을까 엄두가 안 나는 것도 사실. 그런 고로 '적당히 몇몇 곡들만 들어보자!'라는 선택지를 추가해봤다. 프랑스 문둥이에서 나온 헤레베헤의 바흐 박스들과 Accent에서 진행되는 카위컨의 칸타타 음반들로.


 

 장

 단

 헤레베헤

 헤레베헤 좋아요!

적당히 3장씩 묶어 수난곡도 같이 있음

프랑스 문딩이 좋아요!

 같이 있는 수난곡들이 구반보다 못하다는 얘기

곡 수가 부족

(하지만 Phi에서 나올 음반으로 추가한다면?)

 카위컨

 낱장 20장만 하고 끝내겠다는 적절한 계획!

많이 관심 가는 카위컨

 적극적인 리프킨 가설 채택 but 내가 적응 못 함


 역시나 전곡 욕심만 버리면 훨씬 훌륭한 선택지가 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선 카위컨의 단점만 얘기해보자. 카위컨은 리프킨의 '합창 성부당 한 명씩, 독창자들이 합창도 겸직!'이라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채택한 인물이다. 내가 후보로 올린 악상에서 나오는 칸타타 음반들도 리프킨의 주장이 실현된 음반들. 며칠 전 리프킨 가설을 채택하면 어떤 소리가 궁금하여 유튜브에서 카위컨 칸타타 샘플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근데 그 결과가... 으음... 흠... 어... 잘 모르겠더라. 나름 열렬한 시대연주 찬미자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잘 모르겠어. 적응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처음 들어보니 너무도 생소한 소리가 들려와 어벙벙해지더라.


 이렇게 두고 보면 헤레베헤로 가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 아닌가 한데... 잘 모르겠다. 정하기 힘들어ㅠㅠ



3.


 요즘 굴드와 번스타인에 관심이 간다. 둘 다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음반은 적당한 크기의 박스로 잘 발매되어 괜히 모으고 싶어진다고나 할까. 굴드는 The Glenn Gould Collection이라는 이름으로 CD 2~6장씩 쪼개 나오는데 하나 하나 모으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한다. 번스타인도 마찬가지. Collectors Edition으로 작곡가별 박스가 예쁘게 나와 하나씩 모으고 싶어진다. 내가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긴 해도 자기 색이 강한 분들인지라 감상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바도니 하이팅크니 스크로바체프스키니 큼직한 박스 내는 사람들보다도 잘게 쪼개 내는 쪽이 더 매력적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불레즈만 하더라도 DG에서 말러, 바르톡, 스트라빈스키, 드뷔시 & 라벨 이렇게 쪼개서 내주니까 얼마나 사기 편해? 이런 방식의 박스 발매가 보다 활성화된다면 행복하겠다.


 번스타인이랑 굴드를 팔까 말까.........



4.


 아직도 이상하게 연이 닿지 않아 유명한데도 들어보지 못한 곡들이 종종 있다. 오페라야 재작년부터 듣기 시작했으니 그렇다 쳐도 아닌 곡들은... 뭐가 있나 알라딘 보관함을 뒤적여보니


리스트 파우스트 교향곡, 순례의 해 (몇몇 곡들만 들어본...)

말러 피아노 4중주

시벨리우스 쿠올레마 (중에서도 슬픈 왈츠)

쇤베르크 달에 홀린 피에로

브람스 헝가리 무곡 관현악 버젼

모차르트 오보에 협주곡, 클라리넷 협주곡

브리튼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 레퀴엠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바흐 커피 칸타타, 토카타, 오르간곡들

보로딘 교향곡,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차이코프스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하이든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

쇼스타코비치 전주곡 & 푸가

멘델스존 엘리야

프로코피예프 피터와 늑대


 같은 곡들이 보인다. 으음... 여기까지 왔는데 오페라까지 가보자. 기본적으로 들어봐야 할 오페라지만 아직 내가 안 들어본 오페라를 꼽으면...


푸치니 나비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엘렉트라, 장미의 기사

모차르트 코시 판 투테

브리튼 피터 그라임즈

베르디 운명의 힘, 아이다, 돈 카를로, 

베토벤 피델리오

베르크 보체크, 룰루

야나체크 예누파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박쥐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로엔그린

드보르작 루살카

구노 파우스트

마스네 마농

벨리니 노르마

도니제티 루치아


 정도? 으어 뭐가 이리 많아... 올해는 먼저 위의 곡들 음반을 사는 데에 중점을 둬야겠다. 이도메네오니 시몬 보카네그라니 탄호이저니 하는 곡들은 이것들 다음에!;; 



5.


 갑작스러운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타계 소식으로 많은 지인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난 서울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소식을 접했는데, 그의 음악에 덜떠름한 나인데도 먹먹한 기분이 들어 상념에 빠져들게 되더라. 누가 뭐래도 지금 시대의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큰 이름이었을 테니까. 이렇게 하나의 역사가 지는구나.


 여기저기 아바도의 음악을 듣는 분위기이기에 나도 그런 추모 행렬에 동참해볼까 한다. 소박하게 내가 가진 아바도의 음반들을 정주행 하는 걸로. 내가 가진 아바도의 음반이 뭐가 있나 정리해보니...



 우선은 협주곡 음반들. 많은 사람들이 아바도의 협주곡 반주를 칭찬하지만, 난 단 한 번도 그가 협주곡 반주에 능한 지휘자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바도가 참여한 협주곡의 반주에 만족했던 적이라고는 유자왕과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단 하나에서만이었던 듯. 여기서 키신과 피레스의 음반은 입문 초기에 샀던 음반으로 거~의 듣지 않는 음반들, 나머지는 전적으로 협연자가 마음에 들어 듣는 음반들.



 그리고 협주곡 외의 지휘반들. 베토벤 로마 실황 전집과 멘델스존 교향곡 전집은 아바도의 가장 대표적인 음반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난 그의 베토벤은 잘 모르겠고 멘델스존은 결코 좋은 연주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따로 할 말이 없네. 베토벤은 다시 들으면 좋게 들을 것 같지만 멘델스존 교향곡이 좋은 연주라는 말에는 절대 동의 못 하겠다. 아바도의 장기 중 하나인 베르크의 음반은 좋게 들었고.


 아바도 하면 또 역시나 나오는 말러. 특히 저 아바도가 해맑게 웃는 표지의 1번은 국내에서 확고부동한 레퍼런스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물론 난 그것이 좀 의아할 따름이고. 좋은 연주라고는 생각하는데 그렇게 만장일치를 던질 정도로 좋은 연주인가 하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아바도와 시카고 심포니의 말러 교향곡 7번은 내가 가진 모든 클래식 음반들 중에서도 손을 꼽을 정도로 아끼는 연주이다. 훗날의 베를린필과의 연주가 보다 많은 인기를 점유하고 있지만, 나에게 그 연주는 '곡을 잘 아는 지휘자가 훌륭한 오케스트라를 데리고 기분 좋게 연주한' 수작에 불과한 느낌이다. 물론 좋은 연주이긴 하지만 저 시카고 심포니와의 연주에서처럼 냉철한 정신으로 치열하게 곡을 판 젊은 지휘자의 서린 열정과 비교해 떨어진다는 느낌. 오래간만에 헤드폰 끼고 각 잡고 말러 7번을 들어봐야겠다.


 마지막 베르디의 레퀴엠 역시 내가 아끼는 연주이다. 아바도에 대한 나의 불신을 그나마 씻어준 연주 2개가 먼저 말한 시심과의 말러 7번과 이 베르디 레퀴엠이니까. 별로 할 말은 없고 그냥 잘했다. 들으며 아무런 불만도 느끼지 않고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좋은 연주라는 생각이다. 베르디의 레퀴엠이 제목과는 달리 고인을 추모하기에 적절한 곡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아서 나중에 들어야지.


 사실 내가 위에서 실컷 아바도의 연주를 까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는 정말 훌륭한 지휘자라고 생각한다. 아바도 심포니 에디션이 나왔을 때도 아바도만큼 그런 박스에서 훌륭한 수준을 보장할만한 지휘자는 없다는 생각으로 살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했었으니까(하지만 안 삼-_-). 클래식 업계의 관행상 아바도정도의 지휘자 사후 보다 큰 박스가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아심에 구매는 아마도 보류할 것 같지만, 부디 훌륭한 지휘자의 사후 대우가 확실하길 바랄 뿐이다. 작곡가별로 쪼개서 박스 내주세요(..)


 그리고 이건 좀 부끄러운 일이지만... 아바도 타계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슈만 교향곡 전집은...' 이었다. 이런 생각을 한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내가 좀 심각한 클덕이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다. 결국은 2번 하나만 나오고 끝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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