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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블루레이 콜렉터들이 만드는 꿈, DP시리즈 10번째 '트리 오브 라이프'

한국의 어떤 문화산업이 안 그렇겠느냐마는 한국에서의 영화 DVD, 블루레이 산업은 정말이지 처참한 수준입니다. 대여점에서 DVD 블루레이를 빌려보고 사보는 것이 일상인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DVD시장조차 활성화되지 않았으니까요. 당연하게도 DVD를 소장하고자 사는 사람 또한 극소수에 불과하고 블루레이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시장이 워낙 작다 보니 자막이 들어간 블루레이가 적어지고, 정식발매되는 블루레이의 질과 양 또한 떨어지게 되었죠. 판매량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영화들만이 블루레이로 정식발매될 수 있었던 것이(그것도 좋지 못한 수준으로) 한국 블루레이 시장의 현실입니다.


이런 척박한 상황에서 한국의 블루레이 콜렉터들이 모여 작은 일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인 블루레이 소비행위는 제작사가 영화를 발매해주면 발매된 영화 중 사고 싶은 것을 소비자가 골라 사는 방식이었습니다. 사실 일상에서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소비행위가 이런 형식이죠.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향적인 발매가 아닌, 아래에서 위로의 요구로 블루레이가 발매되는 경로가 생겼으니까요. 그것이 바로 여기서 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DP시리즈입니다.



DP시리즈의 시작은 2011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국내 최대의 DVD/블루레이 인터넷 커뮤니티인 DVD프라임의 한 유저가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블루레이 출시 여부를 제작사에 문의하자 '1000장 정도는 판매되어야 손해가 생기지 않는데 그걸 확신할 수 없어 확답을 줄 수 없다'는 대답을 받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2월에 디비디프라임의 운영자가 제작사와 만나게 되고, 디비디프라임 유저들이 적절한 프리오더 숫자를 보장해준다면 블루레이로 발매하겠다는 대답을 듣게 됩니다. 만약 디비디프라임 유저들의 힘으로 블루레이가 제작된다면 디비디프라임 회원들을 위한 한정판을 또한 만들겠다는 얘기와 함께요. '우리가 호응해주면 블루레이가 나온다'는 유례없는 소식에 저를 포함한 많은 디비디프라임의 유저들이 열렬한 환영을 보냈습니다. 본격적으로 블루레이 제작이 시작되었고, 디비디프라임의 유저들은 프리오더만으로 1100장이라는 놀랄만한 수치로 보답했습니다. 


이후에도 DP시리즈는 꾸준히 진행되어왔습니다.

2호 이창동 감독님의 '시'

3호 허진호 감독의 '외출'

4호 5호 신카이 마코토 감독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초속 3cm'

6호 7호 홍상수 감독님의 '북촌방향', '옥희의 영화'

8호 9호 견자단 감독의 '무협', '명장'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한국영화만이 아닌 외국의 영화까지 범위에 들어오게 되었고 애니메이션 또한 포함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DP시리즈 역시 시간이 지나며 성장해나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DP시리즈가 10번째 작품을 만나고자 합니다.


 


DP시리즈의 첫 할리우스 작품이 될 테렌스 맬릭 감독님의 '트리 오브 라이프'입니다. 테렌스 맬릭 감독에 대해서, 이 영화에 대해서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영화가 국내에서 상영됐을 때, 언제 영화를 극장에서 내릴까 두려워 허겁지겁 영화관에 달려가 본 기억이 납니다. 압도적인 영상과 음악은 물론 끝없이 저에게 무언가를 질문하는 이 영화를 보며 울지 않으려 힘겹게 노력해야만 했죠.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울기는 부끄러우니까요. 제가 살면서 그렇게 많은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만큼 긴 여운을 느껴던 작품도 없었습니다. 일상을 보내는 순간순간에도 영화가 저에게 물었던 내용이 떠올라 괜시리 막막한 기분을 여러번 느껴야만 했죠. 


12월 3일 디비디프라임에 '트리 오브 라이프' DP시리즈 추진 공지글이 올라오고 현재 270여개의 리플이 달렸습니다. 12월 16일까지 목표 참여인원수가 750명인 상황에서 이 영화가 과연 750명을 모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정말 좋은 영화지만, 알 사람은 다 아는 영화지만 결국 아는 사람만 알고 즐기는 영화니까요. 이 영화를 보고 영혼이 뒤흔들리는 경험을 했던 저로서는 정말이지 울고싶은 상황인 거죠.


어차피 국내에서 블루레이를 구매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디비디프라임을 알 테고, DP시리즈 또한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 블루레이를 모으시면서도 DP시리즈를 모르셨던 분이 계시다면 지금 조금의 관심을 구걸해보고자 합니다. 무척 좋은 영화고, DP시리즈는 지금까지 어떤 블루레이 한정판보다도 한정판다운 면모를 보여줬으며, 이 영화는 위에 블루레이닷컴의 리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블루레이라는 매체의 강점을 유감없이 드러낼 수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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