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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에마르와 불레즈의 메시앙 - 새가 잠을 깨다



O.Messiaen : Le Réveil des oiseaux


Pierre-Laurent Aimard (piano)

The Cleveland Orchestra

Pierre Boulez (cond.)


Deutsche Grammophon (DG)



 나의 조심스러운 메시앙 여정은 DG에서 나온 정마에와 불레즈의 메시앙 음반들을 하나씩 질러주며 이어지고 있다. 10장짜리 박셋을 사는 게 훨씬 경제적으로 이득이겠지만, 나에게 메시앙은 진지한 감상의 대상으로 포함된 작곡가이기에 박셋으로 대강 훑어 듣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단지 문제라면 정마에와 불레즈의 메시앙 낱장 앨범을 구하는 일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는데, 그마저도 위대한 아마존을 영접하여 문제를 대충 해결할 수 있었다. 정마에의 '4인을 위한 협주곡' 음반도, 그리고 지금 글을 쓰는 요놈도 작년 12월 아마존에 재고가 있는 걸 보고 황급히 지른 놈들이니 말이다. 아마존을 찬양할지어다!


 의도치 않게 몰아 질렀던 메시앙의 음반 2종에서 나의 귀를 가장 즐겁게 해줬던 곡이 바로 '새가 잠을 깨다'라는 제목의 피아노 협주곡 형식의 곡이었다. 메시앙의 주요한 음악적 관심사가 '신앙'과 '새소리'의 표현이란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난 어쩌다 보니 이 곡 이전까지 신앙과 관련된 메시앙의 곡들만을 주로 들어왔었다. 난 이 곡을 통해서야 비로소 새소리를 사랑한 작곡가 메시앙의 면모를 처음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지에 따르면 이 곡은 야밤에서부터 한낮까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잠을 자던 새가 새벽 봄빛에 잠을 깨어 아침에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묘사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모르고 듣던 나이기에 시간의 경과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음표로 만들어진 새소리만큼은 확실히 들을 수 있었고 그것에 무척 강렬한 인상을 받았었다. 특히 곡에서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피아노 홀로 새소리를 들려주던 부분. 다양한 악기를 이용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야 그렇다 쳐도, 피아노 단 1대만을 가지고 새소리를 구현해내는 메시앙의 음악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던 기억이 난다. 또한, 이제는 메시앙의 화성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곡에서 들려오는 중독성 강한 메시앙의 화성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기도 하고. 메시앙은 후기 스크리아빈과 더불어 가장 독창적인 화성을 들려주는 작곡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곡으로 얻은 부수적인 소득이라면 메시앙의 피아노 음악에 대한 이유 없는 두려움을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는 점일 거다. 여태껏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이나 '새의 카탈로그' 같은 메시앙의 대표곡들을 피아노 독주곡이라는 이유로 피하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중에 때가 되면 겁먹지 말고 과감히 질러줘야겠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나 할까.


 메시앙은 아직 내가 모르는 그의 곡이 잔뜩 쌓여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작곡가이다. 조금씩, 차근차근 그의 음악을 알아가야지.




덧. 이 앨범에 실린 '미를 위한 시'를 지레짐작으로 '美를 위한 시'로 생각했던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면 좋겠다. 제발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