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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한과 살로넨의 쇤베르크 - 바이올린 협주곡

 이제는 좀 시들해졌지만, 한때 힐러리 한의 음반을 열렬히 모으고 듣던 때가 있었다. 되돌아보니 내가 그녀에게 반했던 이유는 외모 어떤 곡을 연주하더라도 결코 침착함을 잃지 않는 그녀의 소리가 한가지였고, 환상적인 옆라인 비주류라 할만한 곡들을 꾸준히 취입해주는 것이 다른 한가지였다. 소니 시절 브람스에다 스트라빈스키를, 베토벤에다 번스타인을, 바버에다 마이어(메이어?)를 커플링하는 대범함을 보이더니 DG에선 차이코프스키에 힉던을 커플링하고 아이브즈 바이올린 소나타를 녹음하는 등의 감탄할만한 행보를 보여준 그녀 아니던가. 언제나 새로운 곡에 목말라 하는데다 특히나 바이올린 곡에는 과문한 나에게 그녀의 음반들은 하나하나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창과 같았다. 유명 레퍼토리도 잘 해내면서 새로운 레퍼토리 발굴에도 적극적인 연주자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랴?




A.Schoenberg : Violin Concerto, op.36


Hilary Hahn (violin)

Swedish Radio Symphony Orchestra

Esa-Pekka Salonen (cond.)


Deutsche Grammophon (DG)



 위 음반에서도 힐러리 한의 도전적인 곡 선정이 잘 드러난다. 시벨리우스와 쇤베르크 바이올린 협주곡 커플링이라? 시바협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기본적인 레퍼토리지만, 쇤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 음반 덕에 존재를 알게 된 사람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2013년 9월 지금까지도 ㄱㅋ 디스코그래피에 등록된 쇤바협 음반이 달랑 6개에 불과할 정도니 정말 안 유명한 곡이기는 한 것이다.


 한이 내지에서 밝히는 바로는[각주:1], 그녀는 1997년 '정화된 밤'을 통해 처음 쇤베르크의 곡을 접하게 되었고 쇤베르크의 완전히 새로운 음악적 어법에 깊이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쇤베르크의 새로운 곡을 찾던 와중에 쇤바협의 존재를 알게 됐고 수년간 쇤바협의 녹음을 찾아 들었다. 그녀는 결국 악보를 구해 스스로 곡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곡의 참신함과 음악적 가능성을 발견해 음반 회사에 녹음을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 음반이 청자의 손에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쇤바협은 쇤베르크의 후기 작품으로 엄격한 12음 기법이 적용된 곡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그걸 알 게 뭐람? 어차피 나같은 비전공 청자에게 작곡가가 무슨 기법을 썼고 곡의 구조가 어떻고 하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요는 듣는 내 마음에 드느냐 안 드느냐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쇤바협은 '나'에게 '좋은' 곡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협은 시바협이지만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바협이 바로 쇤바협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순위가 생긴 원인은 전적으로 이 음반에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또한, 내가 가진 바협 음반 중에서 가장 아끼는 음반이 바로 요놈이라는 것 역시 공공연한 비밀.


 언젠간 힐러리 한이 내한에서 쇤바협을 연주해줄 날이 오기를... 물론 쇤바협 같은 곡을 했다간 예매율이 저조해질 테니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올해 베필 내한 예매율만 봐도 불레즈 노타시옹 있는 날은... 갑자기 우울해진다.




  1. 힐러리 한은 음반 내지에 곡과 음반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적어 둔다. 곡에 대한 자신의 인상, 음반에 같이 실린 곡 간의 연관성, 해당 곡의 실연에서의 반응 등등을. 이것도 힐러리 한의 음반만이 주는 독특한 매력이라 생각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