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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원치 않은 혁명, 1848


원치 않은 혁명 1848

저자
볼프강 J. 몸젠 지음
출판사
푸른역사 | 2006-12-29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1830년부터 1849년까지 유럽의 혁명운동 1848년 혁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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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결과는 사실상 농민, 소부르주아지, 일부 노동자들로 구성된 광범위한 대중이 2월 혁명을 이끌었던 이제까지의 정치계급에 대해 보여준 불신임투표였다. 최초의 프랑스 혁명을 종식시키고 동시에 나라를 유럽의 빛나는 강대국으로 만들었던 위대한 나폴레옹의 신화가 합리적인 정치적 논증에 대한 나라 안의 요구, 즉 파리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혁명노선변경에 피로를 느낀 나머지 다시 안정과 질서를 희구하던 목소리보다 훨씬 더 강력했음이 입증되었다. 보통 선거권이 꼭 좌파적인 정치적 다수를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는 초보수적인 결과들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최호근 역, 볼프강 J. 몸젠 저,[원치 않은 혁명, 1848], 푸른역사, 2008., 309쪽


수업이나 과제를 위해 샀다가 완독하지 않았던 책들을 작년부터 하나씩 꺼내 읽는 중입니다. 지금 읽는 책은 볼프강 몸젠의 '원치 않은 혁명, 1848'이네요. 최호근샘의 서양혁명사를 수강하며 샀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솔직히 살면서 처음으로 번역 욕을 내뱉었던 책이기도 한데 다시 읽으며 생각해보니 독일 사학자의 장황한 문체를 번역하느라 최호근샘이 얼마나 고생하셨을까가 먼저 떠올라 웃음이 나옵니다. 


1848년 혁명은 유럽 혁명의 절정이라 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유럽에 다시 보수적 정권이 들어서게 되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인용된 문단은 프랑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주죠. 혁명을 주도했던 세력 간의 지속적인 정치적 노선 투쟁과 그로 인한 사회적 불안정, 그리고 과거의 특정 인물에 대한 향수가 결합하여 초보수적인 선거 결과가 나타나게 됐다는 겁니다. 나폴레옹의 핏줄인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압도적인 득표수로(루이가 540만표, 다른 후보들은 185만표)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는 4년 후에 의회를 해산하며 황제로 등극하죠.


아직 책을 다 읽지는 못하고 이제 한 3/4 정도를 읽었는데 중간에 나온 위의 구절을 읽고 마음이 무척이나 심란해져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인용된 문단을 읽고 최근에 있던 선거 결과를 자연스레 떠올린 것이 망상이 아니길 바랍니다. 지리멸렬한 야당, 안정과 질서를 희구하는 대중, 독재자에 대한 향수까지 너무나도 지금 우리네의 사정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1848년에 '보통 선거권이 특정한 상황에서는 초보수적인 결과들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났'다면 지금 이곳에서는 그것이 재현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이제 저자의 시선은 프랑스를 지나 오스트리아로 향합니다. 오스트리아에서의 혁명은 처음에는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역시나 잠시 숨을 죽이며 추이를 지켜보던 초보수세력에 의해 간단히 진압되고 말죠. 빈에서의 봉기가 제압된 후 저자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1848년 10월 빈 혁명의 패배는 어떤 의미에서는 전 유럽 혁명운동의 정점이었다. 이제는 반혁명만이 휴식없이 진군하게 되었다.


위의책, 315쪽


정말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문장입니다. '반혁명만이 휴식없이 진군하게 되었다'는 표현의 아름다움과 그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대조를 이루어 무척 섬뜩한 기분을 느끼게 하네요. 몸젠의 말처럼 이후 유럽 전역에는 반동적인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실패로 끝난 혁명은 정녕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일까요? 


현실적인 사정상 그 당시에는 노동자계급의 패배가 불가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투쟁 속에서 처음으로 스스로를 계급으로서 의식했다. 이로써 그들은 유럽이 안정된 사회상황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하층계급의 이익이 더 이상 그대로 소홀하게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해주는 명백한 표지를 보여준 것이다.

위의책, 317쪽


완벽한 성공이 있을 수 없듯이 완벽한 실패도 있을 수 없는 법입니다. 몸젠은 1848년 혁명을 통해 노동자가 처음으로 뚜렷한 계급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문장이 해석하기 좀 난해한데 '하층계급의 이익을 소홀히 해서는 유럽의 안정 또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즉, 그때까지 정치권에서 무시당했던 노동자계급이 1848년 혁명을 거치고 나서야 정치에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변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번 선거에서는 20대의 투표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비로소 20대가 뚜렷한 정치적 의식을 표현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죠. 비록 20대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후보는 선거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남긴 것은 하나 있습니다. 20대의 높은 투표율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특별기구로 '청년특별위원회'가 설치된 것이지요. 특별위원회의 설치가 어떤 실질적인 정책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적어도 이제서야 정치권이 20대를 진지하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나쁠지라도 어딘가에는 위안으로 삼을만한 무언가가 있는 법입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지금 우리의 현실 또한 그것을 증명해주니까요. 결과에 절망하기보단 그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찾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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