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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봄방학의 끝

이제 봄방학이 끝났다.

입학한 지 이제 겨우 2달 좀 넘었나. 그새 많은 것이 변했다.


가장 큰 변화라면 내 삶에서 독서가 사라진 것. 입학 이후 읽은 텍스트라고는 학업 관련 교과서와 어떻게든 완독은 하고 있는 시사in이 전부다. 어쩌다 시간적 여유가 생겨도 멍하니 인터넷을 하거나 PS3 게임을 하지 책을 읽지는 않는다. 독서는 나에게 생각보다 많은 의지가 필요한 작업이 되었고 난 그만한 의지를 투입할 여유가, 아니 생각이 없다. 가져온 책들에 꽂힌 책갈피는 자기 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오늘은 청소를 하다 책에 쌓인 먼지를 털어줬다. 슬픔이 손 위에서 바로 녹는 눈처럼 잠시 일었다 자취를 감췄다.


음악을 들을 여유도 적다. 간단히 비교해보자. 올해 4월까지 내가 산 음반은 32장, 작년에 4월까지 샀던 음반은 54장, 재작년의 경우는 52장이다. 오페라처럼 CD 2장 이상인 음반은 지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베르디의 아이다가 궁금하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아직 모르지. 푸치니의 나비부인도. 그러게. 아직도 내가 모르는 훌륭한 곡들이 이렇게도 많은데.


사실 오페라 음반을 지르지 못하는 이유는 시간적 문제보다는 금전적 문제가 더 크다. 한국에서의 오페라 음반 가격은 워낙 비싸서 뻔히 외국에서 싸게 파는 걸 알면서도 선뜻 지르지를 못하겠다. 해외구매를 하면 편하겠지만, 이제는 이것저것 가격 비교하고 한국에 도착할 날짜 예상해서 스케쥴 맞춰 지를 힘이 없기에... 뭐 핑계야 수도 없이 댈 수 있겠지만 결국은 내 덕력이 부족한 거겠지. 내가 좋아하는 영화 허트 로커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As you get older... some of the things you love might not seem so special anymore. 그리고 And the older you get, the fewer things you really love.


하지만 20대가 이런 말을 하기엔 너무 오버 아닌가? 긍정적인 면을 말해보자. 최근 지른 Jazz at Massey Hall을 들으니 재즈에 다시 관심이 생겼다. 물론 지를만한 음반들을 뒤져봤지만 국내에선 대부분 구할 수가 없어서 좌절해야만 했고. 또 저번에 황병기 음반을 지른 이후 국악에 약~간 관심이 생겼다. 이번에는 지를만한 음반을 뒤져보는 것조차 정보의 부족으로 실패했지만. 그래도 악당이반인가 하는 레이블이 국악 음반을 열심히 제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회가 되면 질러볼까 한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허트 로커 하니까 생각났는데, 입학 이후 영화와도 거리가 멀어졌었다. 애초에 내가 열렬한 영화 팬이 아니어서 그런가 집에 있는 블루레이 하나 볼때도 상당한 의지가 필요했었는데, 입학 이후엔 더더욱 볼 기회가 없었지. 다행히도 이번 봄방학에는 medium cool, 더 레슬러를 보고 금방은 인셉션을 다시 봤다. 음악이나 문학과는 달리 영화는 본격적으로 관심을 둔 지 얼마 되지 않아 봐야 할 영화가 태산과도 같은데 게으름 피우면 안 되지. 이제 사놓고 안 본 블루레이가 3개 남았으니 그거 다 보면 다시 질러봐야겠다. 김기덕이랑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먼저 질러볼까나.


최근에야 제대로 깨달은 건데 난 대단한 불평불만쟁이다. 고등학생 때는 고등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다고, 자퇴하고 1년 일찍 수능 봐서 대학 가겠다고 대판 부모님과 싸웠었지(하지만 실패). 대학에 와서는 문과 주제에 의치전 가겠다고 설쳐서 결국 입학했고. 입학해서는 또 의전이 아니라서 불만이고 서울에 있는 학교가 아니라서 불만이고. 근데 이건 그 유명한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의 전형적인 사례잖아? 아니면 다른 유명한 '나루토를 보면 최대한 열심히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우린 열심히 안 하잖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어려울 것 같은 일은 최대한 피하고 설렁설렁 살아왔는데 말이야. 이렇게 써봤자 열심히 안 할 테니 안 될 거야 아마... 불평불만이야말로 개인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나 개인에 대한 불평불만은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까는 아렌스키의 피아노 삼중주를 들었고 지금은 민코프스키의 라모 '상상의 교향곡'을 듣고 있다. 지금 듣는 라모 음반은 큰 이변이 없다면 올해의 best 10에 들어가겠지.


자고 일어나면 다시 시작이구나. 아직 졸리지는 않지만. 열심히 하자는 말은 낯간지러워서 못하겠고 할만큼은 하도록 노력해야지. 글로 쓰는 내 손이 오그라드는구나.


글 저장을 누르기 전에야 깨달았는데, 제목이 소설 '유년기의 끝'과 판박이네. 물론 지금 글과 소설은 별 관계가 없습니다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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