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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13.10.24 서울시향과 사라스테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4번 간단 후기

- 지금 기분이 무척 좋아 천안 도착해 칼스버그 사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아 후기를 쓰는 중. 빌어먹을 천안 편의점에는 맥주라고 칼스버그, 하이네켄, 기네스가 다냐? 에딩거나 파울라너를 마시고 싶었는데 없어... 천안이나 내년에 내려갈 곳이나 밀맥이나 에일 생맥 파는 곳은 없는 듯한데 고로 앞으로의 대학원 4년은 술을 아예 안 마시는 인간으로 코스프레 하기로 결정-_-


- 올해의 서울시향은 정말 각성한 느낌이다. 베르디 오텔로, 말러 9번에 이어 오늘 쇼스타코비치 4번까지...


- 솔직히 들으면서 계속 아쉬움이 생기는 연주였다. 1악장 광란의 푸가토에선 현악의 양감이 부족해 팽팽한 긴장감이 기대만큼 나오지 못했다. 목관 연주자에게 고통과도 같을 곡을 맞아 서울시향의 목관은 충분히 할 일을 했지만 플러스알파는 부재했다. 당연히 곡 끝나고 지휘자가 가장 먼저 일으켜 세우리라 예상했던 바순은 물론 실수 없이 잘해냈지만 그게 전부일 뿐이다. 다른 목관군도 크게 다르지 않음. 시작과 끝을 실수로 장식한 트럼펫 주자의 수미상관은 두고두고 아쉬울 장면. 2악장에서 타악기 주자의 재채기(확실치 않음. 난 악기를 잘못 두드렸나 했는데 재채기였다는 동행의 증언이 있다.)는 좀 웃겼고. 소리가 커지면 갑자기 빨라지는 거나 큰북 쾅쾅과 함께 피아니시모에서 포르테시모까지 급격히 다이내믹 바꾸는 거나 약간 오글거렸지만 이건 지휘자의 재량이라 해야겠지. 3악장 마지막 클라이막스의 행진은 팀파니 리듬이 보다 명료했으면 좋았겠지만 뭐...


- 근데 이렇게 아쉬운 장면을 짚긴 했어도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나 기립박수 쳤을 느낌? 결국 위에서 내가 아쉽다고 하는 건 음반에서나 들을 수 있는 필라델피아나 시카고와 비교해서 아쉽다고 하는 거고 서울시향에게 음반 수준을 바라는 건 당연히 아니다. 워낙 좋은 연주였기에 음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 느껴진 거지. 지휘자와 단원들의 집중력이 피부로 느껴지는 연주였고 저번에 내 인생 최고라고 썼던(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오버였지만;;) 오텔로보다도 오늘의 연주가 좋았다. 공연 전엔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S석을 끊었나 의아했는데 결과적으론 탁월한 선택이었네.


- 곡이 끝나가며 이젠 내년부터 서울시향을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내 클래식 음악 생활에 지금까지 함께해 준 오케스트라인데... 오케스트라가 성장하는 모습을 달이 가고 해가 가면서 느낄 수 있는 오케스트라였고. 정명훈 선생님이 서울시의 지원 하에 계속 설샹을 이끌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도 높은 수준의 오케가 되리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근데 써놓고 보니 무슨 오늘이 서울시향 보는 마지막 날인 줄 알겠네;;;;;;


- 곡이 끝나고 안다 박수가 터졌다. 오늘 공연 관객의 유일한 옥에 티. 벨소리도 없고 대체적으로 관객 매너 좋았는데... 놀라운 점은 안다 박수가 터지자 불쾌해하는 다른 관객들의 압력으로 안다 박수가 멈췄다는 사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눈물이ㅠㅠㅠㅠㅠ 저번 말러 9번 버스커버스커 테러도 아쉬웠고 오늘의 안다 박수도 아쉬웠지만, 관객 매너도 서울시향과 함께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흐뭇하기도.


- 다음 서울시향의 공연은 성시연과 티보데가 나오는구나. 드뷔시 이베리아, 거슈인 피협, 드보르작 교향곡 7번. 티보데에다 드보르작 7번이라니 이것도 나름 설레는 공연. 티보데야 당연히 잘 할 테고 드보르작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