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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프로세다와 샤이의 멘델스존 - 피아노 협주곡 3번




F.Mendelssohn : Piano Concerto No.3 in E minor


Roberto Prosseda (piano)

Gewqndhausorchester

Riccardo Chailly (cond.)


Decca



저는 잊혀진 곡이나 작곡가, 혹은 현대음악을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알리고자 노력하는 것이 프로 음악가의 필수적인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이 위대하다 해도 언제까지고 그들의 음악만을 들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들만큼 위대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름의 가치를 지닌 작곡가, 아니면 부당하게 현대에 와서 잊혀진 곡들, 또는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현대음악을 소개해 클래식 음악 감상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클래식은 그저 죽어버린 음악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리카르도 샤이에 무한한 존경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존 최정상급 지휘자인 샤이는 그 정도의 위상을 지닌 지휘자답지 않게 희귀 레퍼토리에 적극적인 관심이 있는 특이한 인물이니까요. 그가 데카에서 녹음한 푸치니의 희귀 관현악곡 음반, 말러 교향곡 녹음에서의 과감한 커플링,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상임이 된 후 녹음한 말러 편곡판 슈만 교향곡 전집 등 그의 디스코그래피에는 흔히 듣기 어려운 신기한 곡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희귀한 곡들을 찾아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최상의 연주로 녹음하여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발매해주니 일개 청자로서 그만큼 고마운 사람을 또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지금 글에서 소개하는 리카르도 샤이의 멘델스존 음반은 샤이가 말러 편곡판 슈만 교향곡 전집을 낸 이후 발매된 음반입니다. 샤이의 관심이 슈만 이후 멘델스존으로 이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 겁니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상징성을 생각해볼 때 슈만을 해치운 샤이가 '이제는 멘델스존이다'라고 생각한 건 당연했겠죠. 샤이의 슈만 음반을 눈물을 흘리며 듣던 저 역시도 '샤이가 이런 수준으로 멘델스존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혼자 애를 태웠던 때였으니까요.


예상대로 샤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멘델스존을 들고 나옵니다. 단지 멘델스존은 멘델스존이긴 한데 'Mendelssohn Discoveries'라는 묘한 제목을 달고 나온 음반을 내놨다는 문제 아닌 문제가 있었지만요. 음반의 수록곡을 본 전 '교향곡 3번과 핑갈의 동굴이야 그렇다 쳐도 피아노 협주곡 3번? 멘델스존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있었나?' 하며 음반을 받을 때까지 궁금증으로 안달이나 기다려야만 했죠.


음반을 받고 보니 문제는 피아노 협주곡 3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향곡 3번은 'London version, 1842' 라는, 핑갈의 동굴은 'Rome version, 1830'이라는 묘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죠. 피아노 협주곡과 더불어 세 곡 모두 'World premiere recordings'이라는 설명과 함께요.


이 글에서 교향곡 3번과 핑갈의 동굴은 다루지 않으려 합니다. 핑갈의 동굴은 애초에 별 관심이 없는 곡이고 이 음반의 교향곡 3번은 '기존의 판본이 훨씬 낫구나' 하는 감상만을 남겼을 따름이니까요. 물론 샤이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교향곡 3번에서 이전 슈만 음반에서 보여줬었던 무지막지하게 훌륭한 연주를 다시 한번 들려줍니다. 그저 미묘하게 기존에 알던 곡과 빗나가는 부분이 있어(오케스트레이션이 다르거나, 아예 없던 부분이 새로 있거나) 생경한 기분을 느끼기 싫은 거죠.


이 음반의 보물은 절대적으로 피아노 협주곡 3번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지에 따르면 이 음반의 피아니스트 프로세다의 의뢰로 Marcello Bufalini라는 사람이 곡을 재구성해냈다고 합니다. 1악장과 2악장은 활용할 자료가 상당히 많았지만 3악장은 도입부 5마디 이외에는 자료가 극히 적어 여러 흩어진 단편들과 본인의 상상력을 활용해 끝마쳐야만 했다는 Bufalini의 고백을 찾아볼 수 있고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그래서 나온 곡이 끝내주게 좋은 걸요. 이 곡은 멘델스존의 장점이라 할만한 모든 것들을 한데 갖춘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고, 화려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모자라지 않은 오케스트레이션, 전 악장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선율, 거기에 뒤끝 없이 깔끔한 마무리까지. 이 곡만큼 편하고 즐겁게 들을 수 있는 피아노 협주곡이 몇이나 있을까요.


결과적으로 이 음반 덕에 전 더더욱 열렬히 샤이를 아끼게 되었습니다. 샤이는 '청자에게 음악 감상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저의 요구에 완벽하게 부응해냈으니까요. 샤이가 아니었다면 살면서 이런 멋진 곡을 평생 가도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농후했겠죠.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음반을 다시 꺼내 들었는데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역시나 멋진 곡임을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샤이님, 감사합니다!




덧. 전 샤이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멘델스존 교향곡 전집을 완성해주길 바랐지만... 취임할 때 나온 2번과 이 음반의 3번을 제외하곤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샤이는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완성했고 바흐의 주요 관현악곡과 성악곡을 녹음했죠. 정말 답답한 노릇입니다ㅠㅠ


덧. 사실 이 음반에는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곡 하나가 더 있습니다. 이름 하여 'Opening Sketch of Scottish Symphony'!! 1분도 되지 않는 짤막한 곡으로 제목 그대로 교향곡 3번 1악장 도입부의 스케치입니다. 곡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발전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대강이나마 훔쳐 들을 수 있는 재미난 트랙이죠.